사라진 근대사 100장면 by 박종인 기자

2024. 10. 10. 18:44독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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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조의 국정지표와 아이작 뉴턴의 사과

 

1726년 11월 6일: 영조 3대 국정지표 발표

- 계붕당: 붕당을 경계한다.

- 계사치: 사치를 경계한다.

- 계승음: 술을 경계한다.

영조는 50년 넘도록 이 국정지표를 신청. 청령하고 도덕적인 근엄한 정책처럼 보이지만

근대라는 문을 여는 인류사에서는 역행하는 정책.

 

1726년 4월 15일: 아이작 뉴턴 과학혁명을 완성

- 뉴턴: 만유인력의 법칙, 3대 운동의 법칙 <관성의 법칙><가속도의 법칙><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 모든 기계와 과학도구는 이 세가지 자연법칙을 이용해 만들어진 생황용품임. 여기에는 도덕이나 철학, 윤리가 필요없다. 

기업이 생활용품을 만드는 이유는? 경제때문 이윤을 남기기 위함이다.

시대를 초월한 행위. 석기시대에도 돌로 물건을 교환. 언제나 경제행위가 있었다.

 

하지만, 영조시대 50년은 술을 금하고 사치를 금함으로써 마진을 남길 상품 생산이 금지되고

부가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고급 생산기술 개발 작업도 정지되어 버림.

비단 생산 금지, 금실로 수놓은 비단 옷감도 금지 => 무늬비단 제조 기술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복원되지 못함.

조선의 근대는 이렇게 가난한 위선으로 시작.

 

5. 책쾌 학살 미수극과 유럽에 솟은 "지식의 나무"

영조는 청나라에서 출판된 <강감회찬>이라는 책을 팔고, 읽은자 모두 잡아서 처벌한다.

<강감회찬>은 이성계의 조상이 이인임(이성계와 정적관계)이라고 쓰여진 책인데

영조는 본인의 컴플렉스 때문에 조금이라도 자기 권력에 흠집이 가는 일은 참지 못함.

영조 주변에는 형 경종을 감과 계장으로 죽이고 왕이 되었다는 소문이 계속 떠돌았음.

강과 계장은 찬 음식으로 서로 상극인 음식이라고 함. 

 

영조의 조치: 

중국 서적 수입 금지령

책쾌와 거래한 공무원은 무기금고형

책쾌와 거래한 사대부는 양반 명단인 청금록에서 삭제

 

책쾌: 전국을 돌아다니며 책을 팔던 서적중개상

 

조선에는 원래부터 서점이 없었다.

1529년 중종때 대사간 어득강이 서점을 만들자고 건의했지만 의정부에서는

"우리나라 풍속에 일찍이 없었던 일" 이라며 반대함.

1551년 명종 때도 사헌부 장령 윤춘년이 서점을 설치하자고 건의했지만

"서점은 건국 후 200년간 없던 법이다. 윤춘년이 새로 법을 만들어

자기 권세를 높이려고 하는구나" 라고 실록 사관이 평가. 

 

영조의 조치는 단순히 직업 하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정보와 지식 시장이 사라짐.

그래서 조선 사람들은 외판원들에게 의지해 지식과 정보를 습득.

사대부들은 책쾌를 통해 필요한 책을 구입했고 살림이 궁할때는 몰래 팔곤 했다.

그런데 1771년 여름 그 지식과 정보 유통 책임자들이 참극을 당함.

 

숙종 1719년 조선통신사 신유한은 일본 기행문에 이렇게 남겼다.

"오사카는 서적의 많음이 실로 천하 장관이다"

 

"김성일의 <해사록>, 류성룡의 <징비록>, 강항의 <간양록>에는

두 나라 사이 비밀이 많이 기록돼 있는데 모두 오사카에서 출판됐다.

적을 정탐한 일을 적에게 일러바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국가 기강이 엄하지 못하여 역관들 밀무역이 이와 같으니 한심한 일이다."

 

한심한가요? 한심하다고 하는 이 외교관이 한심하지는 않을까요?

 

GPT----

 

**해사록(海槎錄)**은 조선의 학자 김성일(1538-1593)이 기록한 일본 사행록입니다. 김성일은 1590년 일본으로 파견된 사절단의 부사로서 조선을 대표하여 외교 업무를 수행했고, 그의 기록은 일본 사행단이 경험한 다양한 외교적 사건과 문화적 교류를 상세히 다룹니다. 사행의 목적은 당시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강화하고, 조선 정부의 외교 방침을 반영한 외교 의례를 확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김성일은 일본 방문 중에 외교적 예의를 중시했으며, 일본을 교화하고 감화시키려는 자세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본의 발전된 문명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을 격하하는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이러한 시각은 조선 사절단과 일본 측의 관계에 있어 불편함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해사록은 임진왜란을 앞두고 양국의 외교적 관계와 김성일의 견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습니다.

이 기록은 이후 통신사의 의전과 외교적 관행의 선례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징비록(懲毖錄)**은 조선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류성룡(1542-1607)이 저술한 책으로, 임진왜란(1592-1598) 당시의 경험과 교훈을 기록한 역사서입니다. 제목 "징비(懲毖)"는 "지난 일을 경계하고 미래의 재앙을 대비한다"는 뜻으로, 류성룡은 임진왜란 중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조선이 다시는 이러한 전쟁을 겪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류성룡은 전쟁 당시 조선의 영의정이자 군사 총책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징비록에는 전쟁의 원인, 전투 과정, 조선 정부의 대응과 군사 전략, 외교적 노력 등이 상세하게 담겨 있습니다. 또한,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군사 지도자와 관료들의 태도, 일본군의 침략과 조선 백성의 고통, 명나라의 원군 파견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임진왜란의 전체적인 양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징비록은 후세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조선뿐 아니라 동아시아 역사 연구에 있어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류성룡의 자기반성과 조언은 전쟁의 참상과 국가의 위기 관리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며, 조선 역사상 중요한 군사·정치 기록물로 남아 있습니다

 

 

**간양록** 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 강항이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잡혀 간 경험을 기록한 책입니다. 정유재란(1597년) 이후 강항은 일본에 끌려가 오쓰성, 오사카, 교토 등의 성에 억류되었으며, 그 기간 동안 일본의 군사 정세, 풍속, 지리, 문화 등에 대한 정보를 기록했습니다. 일본의 유학자와 승려들과 교류하며 성리학을 전파하기도 했습니다. 강항은 이러한 정보들을 비밀리에 조선으로 보고하여 일본의 약점을 파악하고 국방에 활용하려고 했습니다.

간양록은 원래 '건거록'이라는 이름으로 쓰였는데, 이 의미는 '죄인이 타는 수레'를 뜻합니다. 이후 그의 사후에 제자인 윤순거에 의해 '간양록'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는 한나라의 소무처럼 충절을 지킨 강항을 비유한 것입니다. 책에는 포로 생활의 기록뿐만 아니라 일본의 관직, 군사 체계, 풍습, 지도 등이 포함되어 있어 당대 일본의 상황을 이해하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습니다​

 

6. 고금도서집성과 지식의 독점

 

1777년 4월 1일: 고금도서집성 전질 수입, 총 5020권짜리 백과사전. 51년전 1726년 청나라 웅정제 때 완성.

정조는 이 전집을 다시 제본하라고 시켜서 5024권이 됨.

규장각 관료 조윤형이 도서집성 앞표지를 5000번 넘도록 썼다고 함

함께 규장각에서 근무한 이덕무는 "최소한 도서집성 네 자는 왕희지보다 낫다"고 놀림.

 

 

https://historylibrary.net/entry/%EC%98%A4%EC%B2%9C-%EB%B2%88%EC%9D%84-%EC%8D%BC%EB%8B%A4%EB%8A%94-%E5%9C%96%E6%9B%B8%E9%9B%86%E6%88%90%EB%8F%84%EC%84%9C%EC%A7%91%EC%84%B1

 

오천 번을 썼다는 圖書集成[도서집성]

아정雅亭 이덕무李德懋(1741~1793)가 규장각 검서관을 지내던 어느 때 당대 명필 송하松下 조윤형曺允亨(1725~1799)을 찾아가 글자를 써달라 했다. 무슨 글자냐 圖書集成 네 글자다. "어째서?" "대감께

historylibrary.net

 

정약용의 기중기는 스스로 개발한 게 아니라 정조가 도서집성에서 관련 서적 한권 건네주며 개발하라고 시킴.

책과 정보를 왕과 일부 신하만 독점함. 

또한, 도서집성을 50년전 일본에서 3질을 이미 사갔음. 북경 서적상이 왜 50년 지나서 사가냐고 웃어, 사신단은 창피하여 답을 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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