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4. 21:47ㆍ독클
책 선택 이유:
1. Officially 모빅 경기남부 독서클럽에서 9월의 책으로 선정 (오태민 작가님의 추천 도서)
2. 개인적인 이유:
평소에 신앙심 깊은 기독교인들을 보면 신기하고 궁금했음.
나에게 교회는 의무감으로 참석하고, 1주일에 한번 반성과 기도를 하는 자리인데,
다른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강한 신앙심과 믿음이 생기는지 궁금했다.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친구들, 교회 지인들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이 책을 통해서 기독교가 어떻게 시작되고 부흥했는지 알고 싶고,
나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안식처를 갖고 싶다.
40년부터 300년까지 매10년마다 40% 성장으로 추정.
1000명에서 3300만명으로. 특히 300-350년에는 기독교인 비중이 10->55%까지 급성장함.
기독교인이 집단개종이 있었을 것이다. 교리의 흡인력으로 강력한 매력을 느껴 신앙을 가지게 되었을것이다.
그럼, 신흥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예를 들어 몰몬교의 미국 모임을 관찰하게 되었고, 가담자들은 몰몬교와 개인적 애착관계가 깊은 사람들로, 숭응 행위를 하는 거이였다. 개종의 핵심은 애착관계. 예수님도 제일 먼저 전도한 사람이 어머니와 그의 형제들이였다.
집단개종은 개방형 네트워크를 유지했을때만 일어난다.
읽기 힘들었던 이유: (1) 주장속에 또 주장하는 의견. 그 의견을 뒷받침한 또 다른 의견..
(2) 고대 학자이름 고대지명등 생소한 용어라 기억이 안남 (3) 번역서라 문장이 꼬이면 이해하는데 어려움: 예) 몰몬교가 신종교가 아니라 개신교의 한 종파로 인식된게 아니라면,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크다.
20세기 역사학자들 사회학자들은 기독교 초기의 기독교인들은 사회취약계층으로 프롤레타리아운동이고, 로마의 노예와 빈곤한 대중들의 도피처였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와 주장들이 나왔다. E.A.저지는 최초의 반대한 학자. ”부유한 시혜자들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초기교회 저술가들은 언어와 문체가 학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들” 에드워드 기번은 “인구 대부분이 하층 게층이였기때문에 기독교인들만 유난히 하층계층이 많았다고 간주할 근거는 없다고 주장.” W.M.램지는 “오히려 못배운 사람보다 배운 사람들 사이에서 더 빨리 확산. 기독교가 가장 큰 장악력을 보인 곳은 다름아닌 황실과 궁중”이였다고 주장.
주장하는 이유; (1) 신흥종교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은 새로운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지식적 소양이 있는 기득권층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현재 신흥종교가 그렇다. 몰몬교나 크리스천사이언스와 같은 신흥종교를 믿는 집단들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식인층이다. (2) 기성 신앙에 불만이 있는 빈틈을 찾아내는 기득권층, 신흥종교를 이해하고 필요성을 인지할 만한 교양을 갖추려면 일정 정도의 기득권을 소유한 사람이어야 한다. 즉, 신흥종교의 개종자는 기득권을 덜 가진 사람보다는 더 가진 계층에서 나오기 쉽다. 상대적 박탈이 초기 교회에서 새로운 신자를 모집하는 주요 원천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기대에는 못 미치나 상당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개종할 개연성이 유독 높았다는 것이다.
통념:
1. 기독교 초기 기독교인들은 사회취약계층
-> 반론: 초기 교회 저술가들의 언어와 문체가 학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들이였다. 인구 대부분이 하층 계층이였기 때문에 유독 기독교인들만 유난히 하층 계층이 많았다고 간주할 근거는 없다. 오히려 못배운 사람보다 배운 사람들 사이에서 더 빨리 확산. 기독교가 가장 큰 장앙력을 보인 곳은 다름 아닌 황실과 궁중이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음. 부유한 시혜자들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이그나티우스가 로마의 기독교 교인에게 쓴 서신에서 본인의 순교를 가로막을까봐 걱정된다는 글에서 기독교인이 자신을 사면시킬만한 힘이 있다고 보았다.
-> 직접적인 증거는 과거 기록에서 찾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신흥종교를 추종했던 집단의 사회적 계급을 찾기 위해 현대의 신흥종교 집단을 관찰 조사하였다.
2. 종교 운동이 하위계층의 박탈감에서 비롯된다는 학설, 하층계급이 부유층보다 더 종교적이고, 종교적 헌신의 주된 기능은 빈곤층의 고통을 달래주는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인 정설이였다.
-> 반론: 현장 조사를 통해 발견. 예배 참석한 교인중 취약계증이 적었음. 부자가 더 종교적이라는 것을 발견.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보상 즉, 죽음의 정복...부자나 빈자나 현세에서 영생을 획득할 방법은 없다.
또한, 일부 박해는 있었어도 정치적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였다. 유대-로마 전쟁으로 모두 죽게 된 마사다 저항지와 비교해보면 기독교는 정치적으로 탄압할 정도가 아니였다. 기득권이나 고위층과 연결과 친구, 친인척을 둔 사람들이 있지 않았을까?
3. 통념: 기독교 초창기에만 개종자가운데 유대인이 큰 일군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런 양상은 마사다 반란 이후 급작스레 파국에 이르렀다는 것이 일반적인 추론이다.
바르코바 반란(132년부터 135년까지 진행된 유대인의 반란으로, 로마 제국에 대한 유대인의 마지막 큰 저항 중 하나)이 유대인과 기독교인 간의 연대를 깨뜨리는 최후의 일격이였지만 2세기까지는 유대인의 개종이 상당했다는 관점도 있다.
- 바르코바 반란이 발발할 당시, 기독교 공동체는 이 반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에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점차적으로 소외되기 시작했습니다.
-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로마 제국에 대한 저항보다는 복음을 전파하고 신앙을 확립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과의 연대가 약화되었습니다.
-> 반론: 1-2세기초반까지 교회 성자의 출발 기반을 제공한 것이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였고, 이뿐만 아니라 4세기까지도 유대인이 계속 기독교 개종자의 중요한 원천, 5세기까지도 여전히 비중있는 존재였다라고 저자는 주장함.
통념: 유대인 포교가 실패했다.
신약성서에서는 유대인을 완고하고 사악하다고까지 묘사, 유대인의 기도문에 기독교인을 향항 저주가 삽입됨. 상호 비방은 유대인 포교의 실패에서 비롯된 악감정을 반영한다는 것이 통설이다.
반론:
1. 유관한 사회학:
회당이 활발했다고해서 유대인의 다수가 개종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왜냐면, 미국 내 이탈리아 타운은 활성화되는 동시에 대다수가 민족 집단 바깥에서 결혼했다.
19세기 개혁파 유대인: 주변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기독교로 개종하는 등의 동화를 시도했고, 어떤 이들은 새로운 유형의 유대인이 되는 길을 택해 주변성을 해소하고자했다.
개혁파 유대교는 구약성서에 근간을 둔 비종족적, 비민족적 종교를 제공한다. 관습과 규례가 아니라 신학과 윤리에 초점을 둔다.
- 피츠버그강령: 신학으로부터 민족 정체성을 분리해 내려는 시도를 함.
"우리는 스스로를 더 이상 하나의 민족이 아닌 종교 공동체로 간주한다"
피츠버그 강령(Pittsburgh Platform)은 1885년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유대교 지도자들의 회의에서 발표된 문서로, 개혁파 유대교의 신학적 원칙과 입장을 정리한 중요한 선언입니다. 이 강령은 현대 사회에서 유대교의 전통을 어떻게 해석하고 실천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며, 특히 유대교의 전통을 현대적인 가치와 조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19세기 개혁파 유대인과 그레코-로만 사회의 헬라파 유대인이 처한 상황이 매우 흡사함.
(1) 하나의 민족이 아닌 종교 공동체로 간주
(2) 이미 익숙한 기성 종교들과의 문화적 연속성을 보유한 신종교를 더 수월하게 받아들임
실제로 사람들은 신앙을 seek 하는게 아니라 접하게 encounter 된다.
결국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가족과 친지의 기대와 본보기에 순응하는 것이다.
기독교가 기존 네트워크를 통해 부상해야만 가능. 애착관계를 이미 형성했거나 쉽게 형성할 수 있는 네트워크 기반.
팔레스타인 유대인은 1백만명, 국외는 4백만명, 디아스포라 인구는 5-6백만명
헬라파 유대인은 주도 도시인, 1세기에는 알렉산드리아와 같은 주요 거점 도시에서 부유한 대규모의 유대인 지역 사회가 있었음. 디아스포라 삶을 살아야했기에 예루살램의 유대교와 다른 주변적인 존재가 됨.
히브리어 구사 능력은 토라를 헬라어로 번역해야 할 정도. 카타콤에서 발견된 새김 문자가운데 히브리어나 아람어는 2%미만, 헬라어는 74%. 유대인은 사회적 주변성이라는 불안정하고 불편한 여건.
"유대인이 유대인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헬라의 선택받은 사회" 절출과 통합이 필요했음.
God-fearers(고드 피어러스, 하느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고대 로마 제국 시대에 유대교의 영향을 받았지만, 완전히 개종하지 않은 비유대인(이방인)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들은 유대교의 신을 경외하고 유대교의 가르침에 동조했으며, 특정한 유대교 관습을 따랐으나, 완전한 유대인이 되기 위한 할례 등의 의무는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God-fearers의 특징:
- 유대교 신앙에 대한 관심:
- God-fearers는 유대교의 단일신 신앙(유일신 사상)에 매료되었고, 고대 로마의 다신교적 종교관과는 다른 유대교의 윤리적 가르침을 따르기를 원했습니다.
- 유대교 회당에서 예배에 참여하거나, 유대교 율법의 일부를 따랐습니다. 특히, 유대교의 도덕적 윤리와 금기 사항(예: 우상 숭배 금지)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 할례 거부:
- 이방인이 완전히 유대교로 개종하려면 할례를 받아야 했는데, 많은 God-fearers는 이 요구 사항을 피했습니다. 할례는 이들이 문화적, 사회적 제약을 넘어서기 힘들게 만드는 큰 장벽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들은 완전한 유대인으로 간주되지 않았습니다.
읽기 어려웠던 이유: 예: 몰몬 개종자들은 대부분 가난했다. 단서없이 주장.
1. 개종과 기독교의 성장
저자 로드니 스타크는 기독교신자가 아닌 사회과학자이다. 어떻게 로마 제국 변방에서
시작된 미약하고 이름 없는 메시아 운동이 서구 문명의 지배적 신앙으로 자리매김했는지
기존의 학설들과 이론, 데이타등을 기반으로 분석했고, 또한 직접 통일교의 미국 최초 교인들 모임을
접촉하고 실제 개종되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본인의 역사 재구성을 검증했다.
문선명 교인들이 전도하기 위해 접촉했던 사람들 가운데 입교한 사람들은
구성원에 대한 애착관계가 컸던 사람들이였다. 처음에는 공식적인 라디오출연이나 강연, 자료를 배포애서 전파하려고 했는데, 결론적으로 개종이 일어난 경우는 통일교 이론때문이 아니라 최초 개종자들의 친구이거나 일가친척 때문이였다.
또한, 몰몬교의 자료에 따르면, 선교사들이 불시에 방문하여 문을 두드려서 개종으로 귀결될 확률은 1/1000이였지만, 몰몬교 선교사를 친척이나 친구집에서 만났을 경우 개종 확률은 50% 였다.
즉, 새로운 신앙의 성공적인 창시자들은 전형적으로 그들과 이미 강력한 애착관계가 형성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갔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가족과 친한 친구들중에서 최초의 추종자를 모집했다.
- 이슬람교 창시자 모하메드가 얻는 최초의 개종자는 그의 아내 카디야, 두번째는 그의 사촌 알리, 그 다음은 하인 제이드
- 몰몬교 창시자 조셉 스미스: 초기 개종자들은 친구와 형재들.
- 기독교 또한 예수님이 제일 먼저 전도한 자들은 그의 형제들과 어머니
결론: 누군가를 개종시키려는 운동이 성공하기 위한 기반은
(1) 사회적 개방형 네트워크를 통한 성장
(2) 직접적이고도 친밀한 대인 애착관계라는 구조를 통한 성장
2. 초기 기독교의 계급적 기반
통설: 20세기 대부분의 역사학자들, 사회학자들은 기독교가 사회 취약계층의 운동이였고,
로마의 노예와 빈곤한 대중들의 도피처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였다.
저자 주장: 최근 수십년간 일부 신약역사학자들은 성경에 과잉해석된 부분이 있고,
초기 기독교인들은 대도시 구성원으로 사회 지도층까지 폭넓은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오히려 노예같은 불우한 계층은 기독교에 거의 접근하지 않았다고 해석한다. 즉, 기독교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아니였다.
3. 유대인 선교: 성공의 개연성과 성공 요인
통설: 기독교 초장기에만 유대인이 역할을 했고, 유대인에 대한 선교가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발흥은 달성되었다.
저자 주장: 1-2세기 초반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교회 성장의 출발 기반을 제공했고, 4세기까지 계속 유대인이 기독교 개종자의 중요한 원천, 5세기까지도 여전히 비중있는 존재였다.
4. 역병, 네트워크, 개종
배경: 165년 서구 최초 천연두 출현? 역병으로 로마제국 인구 1/4 or 1/3 이 역병으로 사망
251년 동일한 파괴력을 가진 역병 (홍역?) 농촌, 도시 전역 피해.
저자 주장: 매번 역병이 닥쳤을때, 기독교인인은 월등히 높은 생존율로 기독교인이나 이교도 모두에게 기적으로 비쳐졌을 것이고, 개종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기독교는 천국이 존재한다고 가르쳤다. 죽음 앞에서 인생에 의미를 부여했다.
역경, 질병, 폭력적 죽음이 일상을 지배하는 고난의 시기에 산성 맞춤인 사상과 감정의 체게다.
역병으로 인한 대사망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훈련을 하며 기꺼이 순교를 가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교도는 정반대로 행동. 질병이 처음 발생하자 아픈자들을 내쫓았고, 가장 가까운자부터 도망쳤으며, 병자가 죽기도 전에 거리에 내다버리고 매장하지 않은 시신을 흙처럼 취급. - 디오니시우스 주교가 교인들에게 보낸 서신 중
역병이 유행하는 동안 이교 공동체는 기독교인이 보여준 선행의 수준을 따라잡지 못했다고 주장. 과학, 종교 둘다 역병에 대한 대응이 비효과적이였다. 의사들은 질병 치료에 무기력했다.
기독교의 가르침
- 나는 내 형제를 지키는 자다.
- 남에게 대접받기를 바라는 대로 남에게 대접하라
-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
사람들이 운집하자 키프리안은 제일 먼저 자비의 유익에 대해 호소했 다. 그 후 우리끼리만 아끼고 사랑과 관심을 배푸는 것은 마땅한 일 이지 칭찬받을 일은 아니라고 덧붙이며, 누군가 온전해지려면 '이방인 이나 세리보다 무언가를 더해야 하며'악을 선으로 이기고 하나님과 같 이 자비와 선을 행하고 원수조차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선행의 대상은 단지 믿는 가정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었다(하르낙에서 인용 1908:1:172-173). p. 137
5. 기독교의 성장과 여성의 역할
그레코-로만시대(고대그리스와 로마문화가 결합된 시기, 기원전 8세기~서기 5세기) 에는
원치 않는 여아와 기형 남아를 유기하는 것은 합법이였음.
그리스 아테네법: 여성은 나이와 무관하게 아동으로 분류
로마 소녀들은 조혼, 만 12세 결혼, 재혼 강요
반면, 기독교는 영아살해와 낙태 금지, 과부가 재혼 여부 결정, 여성은 늦은 나이에 초혼, 배우자 선택권
집사라는 중요한 직분이 생김. 순교자중에 상당 비율이 여성이였다는 것은 공적 위치에 있음을 의미.
1차개종 여성 -> 2차개종 남편, 애인
인구감소의 주요인:
- 영아살해: 영아나 기형아 살해. 유기. 서기 6세기경 하수구에서 신생아 100구 발견
- 낙태: 자세한 낙태도구 사용법 묘사 문헌, 인구감소 및 여성 사망 원인, 로마법 낙태 의무화
- 산아 제한: 피임. 아내와의 관계 기피?
- 적은 여성들: 낙태 피임등으로 불임 상태
기독교인의 출산력:
- 고출산의 주 요인은 결혼이라는 구속을 신성시하는 문화
- 낙태는 죄이고 살인이라고 가르침. 피임 반대
- 여성 비율 60%
6. 도시 제국의 기독교화
디아스포라의 회당은.. 제국 전역으로 기독교 공동체가 발흥하고 성장해 나가는
가장 중요한 전초기지였다. 회당이라는 네트워크는 기독교 포교의 구심점이자 포교 활동을
발전시켜 나가는 통로 역할을 했다.
기독교가 유대인의 이단으로 출발.
기독교가 초기에 어필했던 대상은 유대인
영지주의는 그 후 기독교의 이단으로 출발
영지주의가 어필했던 대상은 기독교인
영지주의란:
기독교 영지주의(Christian Gnosticism)는 초기 기독교의 한 형태로, 물질 세계와 영적 세계에 대한 이원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지주의는 헬레니즘 철학과 유대교, 초기 기독교 사상 등이 혼합되어 발전한 사상으로, “영지”라는 말은 “지식”을 뜻하는 그리스어 gnosis에서 유래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신과 우주의 비밀을 깨닫는 영적, 신비적 지식을 의미합니다.
기독교 영지주의의 주요 특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이원론: 물질 세계는 타락한 세계로 보며, 악한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습니다. 반면 영적인 세계는 진정한 세계로 여겨지며, 선한 신이 그 근원입니다.
- 구원: 구원은 물질적 세계에서 벗어나 영적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영적인 지식을 깨닫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영적 지식을 인류에게 전해 주는 구세주로 여겨집니다.
- 신과의 관계: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의 영혼이 본질적으로 신적인 것이라고 보며, 이를 통해 신과 직접적인 연결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종종 구약성경의 창조신(데미우르고스)이 아닌, 더 높은 차원의 신을 숭배했습니다.
기독교 영지주의는 정통 기독교와 달리 물질 세계의 창조를 부정적으로 보고, 예수의 역할을 영적 지식 전달자로 강조하며, 기존 교회의 가르침과는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이로 인해 2세기 이후 교회는 영지주의를 이단으로 간주하고 배척했습니다.
결론: 기독교 운동이 소아시아의그레코-로만 도시들에서 가장 빠르게 발흥했으며, 그것을 지탱한 것은
매우 큰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였다.
7. 도시의 혼돈과 위기: 안디옥의 사례
그레코-로만 도시에 관한 첫번째 중요한 팩트는 도시들이 면적과 인구, 이 두가지 측면에서 모두 소규모. 처음 건설 당시 요새 목적으로 건설되었기에 면적이 작았다. 1세기말 총인구 15만명, 인구 밀도는 1평방마일당 7만5천명. (1mile = 1.6Km)
4천제곱미터당 117명
안디옥을 강타한 자연재해와 사회적 재앙
그레코-로만 도시는 침략, 화재, 지진, 기근, 역병, 폭동등에 심각하게 노출
600ㄴ년 로마 통치기간동안 11번 침공. 6세기동안 수백번의지진으로 도시 괴명, 사망자. 역병으로 25% 사망률
매번 도시가 재건된 이유.. 페르시아 접경 지역으로 엄청난 전략적 중요성을 지닌 안보의 요충지.
결론: 고대의 처참한 사회상이 기독교의 출현을 초래했다는 뜻이 아니다.
주장하는바는 일단 기독교가 출현한 후 기독교가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 우월한 대응력을 갖췄고, 이 점이 기독교의 승리에 큰 몫을 했다.
- 도시문제 해결할 새로운 규범과 새로운 유형의 사회적 관계를 제시, 그레코-로만 도시인의 삶을 재활성화.
노숙자와 빈민가는 기독교가 구제뿐 아니라 희망도 제공
신착자와 낯선 사람으로 가득 찬 도시에서 기독교는 즉각적 애착관계의 토대 제공
고아와 과부로 가득찬 도시에서 기독교는 신개념의 확장된 가족을 제공
폭력적인 인종 분쟁으로 갈라진 도시에서 기독교는 사회 응집의 새로운 토대 제시
역병,화재, 지진과 마주한 도시에서 기독교는 효과적인 간호 서비스 제공
즉, 기독교는 그레코-로만 도시의 삶을 더 잘 견뎌낼 수 있게 하는 새로운 문화였다.
8. 순교자: 희생은 합리적 선택이였다.
유세비우스의 저서 '팔레스타인의 순교자들'(On the Martyrs of Palestine)은 4세기 초반 로마 제국에서 일어난 기독교 박해 시기에 팔레스타인에서 순교한 기독교인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저작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심하게 박해하던 시기(303년경~311년경)를 기록한 것입니다. 유세비우스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순교자들에 대해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을 중심으로 매우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프로코피우스: 순교자 최초, 헌주 의례를 행하지 않고 즉각 참수
로마누스: 재판장이 화형 선고, 불은 어디있소? 라는 말을 해서 혀를 잘라내는 고문
발렌티나: 함께 체포된 여자 교인이 고문받자 "도대체 언제까지 내 자매를 잔인하게 고민할겁니까? 재단을 뒤엎자 더 심한 고문
유세비우스에게 순교자의 용맹과 절개는 기독교가 가진 미덕의 방증이었고, 실제로 많은 이교도가 깊은 인상을 받았다.
로마황제의 시의(의사) 그리스인 갈렌은 기독교인을 가리켜 "죽음을 멸시하는 게 날마다 우리 눈에 뚜렷이 보인다"라고 기술.
하지만, 현대 사회과학자들은 이런 희생은 뚜렷한 정신병리학적 증세, 초기기독교인의 인내력은 피학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순교과정의 고통을 즐기는 것. 극한의 고문이 행해질 것을 알면서도 순교 체험에 자발적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것은 분명 피학 성향이 있음.
저자는 합리적 선택 이론으로 희생과 낙인은 기독교 발흥의 원동력이였다고 설명.
실제로 사람들이 그들의 신앙을 위해 치러야 할 희생이 클수록
그들이 얻는 보상의 가치는 더 크다. 즉, 비용 대비 효과면에서 한계치 내에서는
종교가 고비용일수록 더 나은 거래가 성립된다.
희생과 낙인 덕분에 교회는 어떤 일도 불사하려는 지극히 헌신적인 구성원이 대거 포진한
강고한 조직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기독교가 단연코 최고의 종교적 "거래"였기 때문이다.
간증은 종교집단에서 그 보상장치에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키고 주로 사용되는 집단 행동적 수단.
간증은 사람들이 간증자의 주장을 믿는다고 해도 간증자에게 돌아갈
상대적 실익이 별로 없을 때 그 설득력이 배가 된다.
내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막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희생재물로
내 피를 흘리도록 내버려두라고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그나티우스
초대 기독교 순교자 이그나티우스(Ignatius of Antioch)는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에 활동했던 인물로, 안티오키아(고대도시 시리아남부)의 주교였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그나티우스는 로마 제국의 박해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고 로마로 끌려가던 중,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 여러 편의 서신을 작성했습니다. 그의 서신은 기독교 초기 교리와 신앙의 중요한 자료로 여겨지며, 교회 내의 조직과 성체성사, 교리적 교훈에 대한 그의 견해를 담고 있습니다.
이그나티우스는 순교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확립하며,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순교는 단지 사후세계의 보상을 약속하는 것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의 칭송과 경의를 받았다.
기독교는 과부와 어린이를 돌볼 교회의 책임을 강조.
헌금으로는 가난한 자들을 지원하고 시신을 매장하고
부모없는 불우 아동들과, 노인들을 돋는데 쓰였다.
9. 기회와 조직
<기회>
- 로마의 종교 규제: 기독교식 이름, 시위 행진, 비밀종파가 아니라 개방된 네트워크로 활동했기 때문에 종교규제가 사실 아주 심각할 정도는 아니였다.
- 다원성: 그레코-로만 종교 경제내에서 규제가 별로 없었으며 폭넓은 다원성을 유지했음
- 이교의 취약성: (1) 이교 과잉과 유지비용 많이 들어서 국고지원, 파피루스 문서에 이교에 대한 업급이 매우 부족 (2) 종교 경제의 격변성이 극대화 - 이시스신종교의 빠른 확산, 기독교의 확산 사이의 상관도가 매우 유의미함. (3) 공적 경외심의 부족: 폼페이 벽화들이 전달하는 신에 대한 가볍고 공리주의적이고 분노심까지 녹아있는 시대적 태도
- 유일신교를 향하여: 선악을 불리. 사회가 오래 되고, 대형화되고, 세계화될 수록 선한 신과 악한 신의 구분선이 더 명확해짐.
- 사회 해체: 이교의 무기력과 기독교인의 통제 범위 밖에 있는 이교 자체의 취약점으로 인해 기독교에 상당한 확장 기회가 열렸다.
파피루스 문서는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된 파피루스 종이에 기록된 문서로, 고대 문명에서 중요한 기록 매체 중 하나였습니다. 이 문서는 주로 이집트, 그리스, 로마 등에서 법적 계약, 세금 기록, 개인 서신, 종교적 텍스트, 문학 작품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파피루스는 파피루스 식물의 줄기를 얇게 잘라 배열한 후 압착해 만든 일종의 종이로, 가볍고 운반이 용이했기 때문에 당시 기록을 보존하는 데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파피루스 문서의 내용은 여러 방면에서 고대 사회의 정치, 경제, 종교, 법률, 교육 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조직>
- 클라이언트 신종교: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성직자와 교인의 관계보다는 전문직 서비스 종사자와 클라이언트 간의 관계와 비슷함.
기독교는 국고지원이나 부자의 기부에 의지하지 않고 적은 돈이라도 십시일반으로 거둔 헌금으로 활성화됨
로마인들이 기독교를 말살하기 위해 지도자층만 박해했는데, 이것은 도움이 되지 않음, 왜냐하면 체포된 지도층외에는 일반 기독교인들은 활동하고 처벌도 없음. 평신도들의 대중 운동이였음.
ㅇ결론 ㅇ
기독교가 성장한 이유는 기적을 행사해서도,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천명해서도, 순교자들이 신뢰도를 높였기 때문도 아니였다. 기독교인이 치열한 공동체 생활을 했기에 가능했다. 이웃을 초대하고, 복을을 나누려고 노력했던 수적으로 증가하는 기독교 신자들이였다.
10. 미덕에 관한 소고(짧은 연구 보고서)
기독교의 중심 교리는 매력적이고 해방적이며 효과적인 사회관계와 조직을 촉발하고 지탱했다.
이 독특한 교리가 기독교를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성공적인 재활성화 운동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말씀>
이교에서 신들은 항상 희쟁제와 예배를 요구.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은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한다라는 발상은 이교도에게 새로운 놀라운 개념
고대 철학자들은 지바와 동정심을 병리학적인 감정으로 취급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피해야 할 성격상의 결함으로 간주.
자비란 "노력하지 않은 자"에게 도움이나 위안을 제공하는 것이므로 정의와 상반
자리라는 충동을 절제하는 법을 배워야 함.
"받을 자격이 없는 자가 자비를 구하는 외침"에는 "응답하지 말아야 한다"
동정심은 현자에게는 걸맞지 않은 성격적 결함.
동정심은 무지에 근거한 충동적인 반응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기독교는 자비가 주요한 미덕이며,
자비로운 신이 인간에게도 자리로울 것을 요구한다고 가르쳤다.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기독교인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는 논리는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였다.
더 혁명적인 것은 기독교인의 사랑과 구제는 가족과 부족의 경계를 넘어서
기독교 공동체가 확장되었다.
원수조차 사랑해야 한다.
<육신>
로마는 제국을 통일하면서 다양한 언어, 신종교집단, 전통, 교육수준을 가진 사람들의 문화적 혼돈이라는 대가를 지불하고 정치경제적 통일성을 이룩했다.
기독교는 민족성을 완전히 탈피한 통일성있는 문화를 제시.
인종 장벽으로 유대교는 재활성화의 토대로 쓰임받는데 장애가 되었다.
디아스포라의 많은 헬라 유대인이 기독교에 큰 매력을 느낀 이유는 바로 민족적 정체성의 속박을 풀어주었기 때문.
또한 기독교는 남녀 관계와 가족내 관게, 사회적 관계의 해방을 촉발.
기독교는 변덕스러운 잔인성과 대리 만족적 죽음의 갈망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인류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
황제의 어린 아들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경기에서 사람들이 죽어야 했다. 수십명, 때로는 수백명이 죽었다.
돈을 받고 자원한 검투사와는 달리 들짐승에게 던져진 사람들은 종종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자였다.
이들의 운명을 두고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쟁점은 사형이 아니다. 쟁점은 스펙터클 쇼다.
경기장의 군중에게는 사람이 짐승에 의해 갈가리 찢겨 잡아먹히고
무장 격투전으로 희생당하는 장면을 지켜보는게 궁극의 쇼였던 거이다.
한 소년의 특별한 생일 선물을 위해서. 이런 사람들의 정서 상태가 어떠했던걸까..
기독교인은 잔인성과 쇼 관람 둘 다 정죄했다.
너희는 살인하지 말지니라.
결론적으로 기독교가 개종자에게 선사한 것은 그들의 인간성에 다름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덕은 그 자체로 보상이 되었다.
GPT: 기독교 신앙이 개종자의 인간성에 본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기독교에서 실천하는 미덕(자비, 사랑, 용서)이 단순한 외적인 보상 없이도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기독교의 미덕은 내적인 성찰과 도덕적 성장을 통해 얻는 진정한 보상으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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